어두워진다는 것
나희덕 작가의 시집이다.
잠을 들다
잠이라는 빵을
그는 어제 아침부터 뜯어먹고 있다
삼복더위에 솜잠바를 입고
시장 입구 버려진 철제 캐비닛에 기대어
하염없이 하염없이 잠을 들고 있다
건어물상을 나와 정육점에 들어갔던 파리는
과일가게 앞 쪼개놓은 수박의 붉은 살 위에 앉았다가
그의 콧잔등에 날아와 잠을 빨아먹고 있다
그러나 굳게 닫힌 그의 두 눈은
잠을 삼키느라 여념이 없고
마를 대로 매마른 입술은
잠을 씹느라 움직일 줄을 모른다
그의 팔다리 역시
고픈 잠이 아직 남아 있는지
녹슨 캐비닛보다 더 굳게 잠겨 있다
그는 땀조차 흘리지 않는다
잠시도 잠들지 않는 시장 입구에서
그는 어제부터 잠 말고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너무 많이 먹은 사람처럼
이따금 입 밖으로 흰 액체를 흘려보낸다
그를 둘러싼 공기들이 석회질처럼 굳어간다
눈의 눈
봄이 가까워질수록
눈은 산꼭대기로 올라단다
햇빛이 시려워 시려워서
피워놓은 눈꽃을 자꾸만 꺼뜨리며 따라오는
햇빛의 눈을 피해
눈은 음지로 음지로 숨어든다
누구도 그를 알아볼 수 없는 곳으로
쫓기지 않고서는 오를 수도 없었을 산정에서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겨우내 연기 한번 피우지 않고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바위틈에 간신히 서려 있다가
점점 잦아들어, 마침내
훅 꺼져버린
눈의
눈
시린 물
흘러내리는 이른봄마다 나는
눈 어두워 알지 못했네
그것이 한 은둔자의 피라는 것을
이 시들이 가장 좋았다. 참신한 표현들이다.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다. 잠이 든 것을 저리 표현했을까 눈이 녹는 것을 음지로 숨어든다고 표현했을까 신기하고 재미있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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